나에게 어머니란 ‘명사’는 ‘눈물’이고 ‘의미’이다. 서른다섯 해에 아버지의 사랑을 잃고 삼남 이녀의 짐을 떠안고 사신 당신이기에 늘 안쓰럽기만 한 존재이시다. 아니 한 번도 세상의 행복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당신의 ‘업(業)’을 받아들이셨기에 더욱 그러할 뿐이다.
어린 시절 늘 귀에 따갑게 듣고 자란 명언은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 복이 있느냐’라는 말이었다. 남편에 대한 버림은 한 여인을 강하게 하지만 한없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할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폭발할 것 같은 분노가 지금의 어머니들처럼 ‘포기’와 ‘일탈’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군대에 가 있는 아들에 대한 기다림과 염려를 위한 ‘신앙’에 귀의(歸依)한 것이셨다.
막내인 나는 어머니와 함께 벌떡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가고 항상 그녀의 눈물과 표정을 살피는 것이 의무이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께서 기분 좋으실까?
지금도 느껴지는 통곡소리. 자식들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한 여인의 비통함과 처절함. 남편에 대한 원망. 하늘에 대한 원망.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시면 밥을 짓고 교회를 향하신 어머니. 어쩌다 함께 길을 나서지 못하면 위풍이 센 방 한 구석에서 밥상을 놓고 오실 때까지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녀의 고통 앞에 적어도 집안에 한 사람은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 세상의 사람다운 자식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 어머니와 나와는 두터운 신뢰가 있었다. 학교에서 꼭 필요한 돈은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이 없으셨다. 납부금 마감 날짜를 한 번 물으시면 두 번이 필요 없으셨다.
누구보다 집안 형편을 알기에 반찬 투정을 하는 둘째가 미웠고, 멋을 부리는 누이가 철이 없다고 느껴졌었다. 그래서 한 번도 독촉을 하지 못했다. 한 번은 마감 날인데 아무 말씀 없이 일 나가셨다. 어떡하나 하던 차에 밥을 먹으려고 밥상 보자기를 젖히니 거기에 납부금과 “잘 갔다 내”라는 메모를 보고 그냥 눈물이 났다.
새벽에 이렇게 글을 쓰니 그때의 일들이 그냥 주마등처럼 새록새록 하다. 내가 학생들의 진로교육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누구나 가능성이 있는데 기성인들의 헌신과 신뢰를 보지 못했을 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모두가 모순(矛盾)돼 보이고 아무리 좋은 말로 훈계(訓戒)를 하더라도 의미 없어 보이기에 흔들리는 그들은 방황하고 반항을 하는 것이다.
바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어머니가 그래서 중요하다. 집을 나가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말없이 기다리는 성경 속 탕아의 아버지 같은 마음 그리고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음식과 좋은 옷을 그냥 내 줄 수 있는 그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과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이젠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어디서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줄 모르는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제발 소리 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제일 힘이 든다. 학교에 가도 맘 편치 않고, 집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그들은 그냥 친구를 찾는다. 자기를 제일 잘 아는 친구와 얘기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을 더 내몰지 말고 편하게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그냥 늘 미안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자식들이 돈을 주면 택시를 타지 않으신다. 한사코 버스를 고집하신다. 그것을 가지고 서로 다투어도 그런 어머니가 그래도 존경스럽다. 어머니 그가 늘 즐거움과 편함만을 추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 싫다.
지금의 문제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이 간혹 당신 자신들의 황금기에 자식보다 ‘당신의 삶’을 선택했기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황금기 즉, 30대, 40대에 자식은 그들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기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는 당연함을 누구의 탓이라 돌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황금기’를 위해 평생을 한탄하고 후회하며 그렇게 살아가야 할지가 문제이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를 위해 아껴두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선택은 모두가 자신의 ‘몫’이고 결과도 자기의 ‘몫일’ 것이다.
2024.3.12 화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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