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바로 옆 천안에선 눈이 내렸단다. 11월 눈을 기다리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눈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면 눈 때문에 아마 상처를 입은 사람일거다. 해마다 눈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어도 눈을 기다리는 것은 눈이 주는 설레임이 아닐까.

 흩날리는 눈이 아니라 조금은 불편해도 펑펑 내리는 눈을 맞고 싶다. 창문 밖을 쳐다보며 탄성(嘆聲)하는 아이들이 그려진다. 님 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도 첫눈을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어디를 가면 좋을까. 밤새 생각하다 만나기로 한 그 사람. 약속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을 때 기다리는 마음.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이미 올 시간은 되었는데. ...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어디쯤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때는 확인할 수 없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하다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되는 마음을 누가 알까. 밤새 오지 않은 사람을 생각하다 결국 그 집 앞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리워진다.

아이가 처음 생겼을 때의 느낌을 아는가. 의사 선생님의 증언으로 가까스로 믿게 된 사실. 초음파로 이리보고 저리 봐도 작은 점(點)이었던 아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러오는 아내의 배와 초음파에서 보이는 머리, 팔, 다리로 확신한다. 그가 언제나 세상 밖에 나올까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것에도 비교를 못할 것이다.

비로써 세상 밖으로 우여곡절(迂餘曲折)속에 나온 그를 맞이한 희열(喜悅)과 탄성.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랬던 아이가 성장하여 처음 학생이 되던 날이 생각난다. 여러 해 유치원을 다녔지만 학교에 갈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새로 사온 가방을 메고 거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아이를 보며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누가 알까.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맞지는 않을까. 공부는 잘 따라갈까.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인가보다.

입학식 날 한 줄로 선 아이를 보는 마음은 다양하다. 다른 아이들 보다 내 아이가 튼튼하고 키가 큰 부모는 왠지 당당해 보였다.

비교적 동시대의 아이들보다 작은 내 아이를 보는 부모마음은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진 기분이다. 모처럼 운동장을 보고 있을 때 앞에 있는 아이가 내 아이를 주먹으로 쥐어박을 때 비굴한 아이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그냥 서글퍼진다.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앞에 있는 아이를 그 자리에서 때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부모 마음이다.

아이가 세상에 적응해가며 부모의 감흥도 결국 시들어진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서로 조금씩 놓아주고 포기하는가 보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이 구분되어지고 계산적이 되었을 때, 그를 향한 나의 설레임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첫 눈도 우리 마음속에 결국 귀찮은 존재가 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법정 스님은 그의 잠언 집에서 ‘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라 녹슨 삶이다’.라고 회고하신다.

그렇다. 바로 첫사랑의 설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함께 가는 이와의 설레임을 찾아야 한다. 조금은 힘들고 지치더라도 설레임이 없으면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도, 아내 아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의 설레임을 간직해야 한다. 휴대폰으로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의 위치이지만 가끔은 휴대폰을 끄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순간순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설레임을 만들어보고 찾아보자. 더 이상 녹슬지 말자.

▲(사)경기진로교육연구소장 / 이학박사 김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