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
편집 : 2021.5.6 목 17:58
> 뉴스 > 문화/연예 > 문화일반
     
[기획 연재] 산성의 도시 대전 - 구성동 산성
580m 규모 흙으로 쌓은 성…나말여초 시기 유성 일대 호족 성 추정
2021년 04월 16일  15:42:05 허송빈 기자 news@gocj.net
   
▲ 대전시 기념물 제6호인 구성동 산성은 흙으로 쌓은 토축성으로 성벽을 찾아 보기가 매우 어렵다. 나말여초 시기에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성은 유성 일대 호족의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산성의 도시 대전을 연재하는 첫 글에서 대전의 산성에서는 성벽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찾아보기 힘든 성이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구성동 산성이다. 구성동 산성은 전체 길이 580m에 달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성벽을 찾아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흙으로 쌓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성동 산성은 갑천의 북쪽에 위치하는 대전 분지 내부의 평평한 구릉성 산지에 축조된 토축성(土築城)이다.

대전 지방 기상청을 삼면으로 감싸고 있는 해발 86m의 성두산(城杜山) 구릉 정상부와 여기서 남쪽으로 좁고 길게 뻗은 해발 75m의 능선에 걸쳐 있는데 성두산을 감싸고 있는 본성(本城)과 능선에 만들어진 외성(外城) 두 개의 성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외성은 성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을 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인 치(稚)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이 위치한 구릉의 동쪽에는 청동기 시대의 송국리 유형 단계부터 원삼국 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4세기 중·후반 무렵을 중심으로 하는 분묘군(墳墓群)으로 구성돼 있는 구성동 유적이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성 안팎에서는 원삼국 시대 이래의 토기 조각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성벽을 쌓았던 흙속에서도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 무렵까지 나말여초(羅末麗初)의 토기 조각들이 확인됐다.

구성동 산성은 대전 일대의 대부분 산성과는 지리적 여건이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성벽 역시 토축으로 돼 있어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성은 나말여초 시기를 전후로 각 지방의 호족(豪族) 세력이 머물렀던 평지 또는 야산(野山)의 성으로 보는 학술적 견해가 있다.

구성동 산성 역시 나말여초 시기 지금의 유성 일대를 세력 기반으로 하였던 호족의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허송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시티저널(http://v639.ndsoftnews.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네이버블로그
최신기사
국민의힘,“전국 꼴찌 허시장, 시민의
주호영 "대선 승리 조건은 야권통합
양승조, 12일 세종시서 ‘대통령 출
대덕구, 선배시민의 지식과 경험으로
대전 중구,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
문화/연예
청각 장애인 위한 경복궁 문화 체험
문화재로 근현대사를 보다 학술 대회
대전 동구, 2021년 상반기 문화유
2021 전통 연희 판놀음 청춘연희
제10회 녹색 문학상 작품 공모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제호 : 대전시티저널 | 대전시 유성구 유성대로 773, 301호(장대동) | Tel 042)320-2453 | Fax 042-367-0012
사업자등록번호 : 314-86-41452  |  등록번호 : 대전아00009  |  등록연월일 : 2006.9.11
발행인 :김선호  |  편집인 : 안희대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호
Copyright 2006 대전시티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fo@gocj.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