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는 ‘7080’ 가요 프로그램을 모처럼 시청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가수 신승훈, ‘밤차’의 이은하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데뷔 20년, 30년의 가수답게 단순한 노래라기보다는 그 속에 삶이 배어 있다. 아마 그 프로그램을 지켜 본 많은 시청자들은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함께 나누기에 충분했으리라 본다.
필자의 집은 ‘대전시 용운동 산23번지’이었다. ‘산’이라는 용어가 있어 이해하기가 편할 것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산동네이다. 정확히 말하면 산으로 가는 초입에 있었다. 이즈음엔 산동네로 향하는 연탄수레와 김장배추 수레로 인해 골목길이 북적거렸다. 동네 어귀에서 출발한 수레들이 본격적인 오르막길 앞에서 힘을 다지는 구간이 바로 우리 집 앞이었다. 그런 연고로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함께 밀어주기도하고, 어머니 몰래 수레당 얼마씩 아르바이트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산(山) 수도에 의존해야만 했다. 산에서 출발한 물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약수(藥水)’라고 소문이 나서 전문 브로커가 산을 매입해서 물을 팔아먹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백호(百戶)가 넘지 않은 가구가 식수로서 활용하는데 만족할 수 있었다. 빨래는 어머니가 세수 대야에 담아 개울가에 나가서 해야만 했다. 동네 어귀에 ‘공동수도’가 들어설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사방공사에 나가시는 어머니 대신 소방호수에 물을 담아 놓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생겼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 당시 소원은 입김이 나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부 열을 지킬 수 있는 단열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방안에서 대화를 할 때는 입김이 솔솔 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연탄보일러로 시공한 방바닥은 물이 순환이 안 좋은지 따뜻한 지역이 정해져 있어 그 곳에 이불을 펴놓고 열이 나가지 않도록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열을 나누던 기억이 난다. 시집간 누나 방이 비어 그 곳에 불을 넣어 달라고 생떼를 쓰다 맞은 일도 기억이 난다.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은 누나 방을 쟁취해서 불을 넣고 하룻밤을 잤는데 연탄가스를 마셔 죽다 살아난 일일 것이다. 생전에 동치미를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을까.
93년에 첫 발령을 부천에 받았었다. 제일 먼저 할 일이 방을 얻는 일이었다. 내 형편으로 오피스텔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단지, 방을 얻는 첫째 조건은 입김이 나지 않는 방이었다. 방을 구하는 과정에서 ‘현대부동산’ 황사장님은 입김 나는 방은 없다고 위로하셨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2만원 내는 방, 입김이 나지 않는 방, 혼자 사용할 수 있는 방 나의 소원은 그때 다 이루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입김이 나지 않은 것이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집이 입김이 나지 않을 수도 있구나!” ‘17평 연립주택’인 친구의 집이 너무 부럽기만 했다. 그 꿈을 선생으로 첫 발령을 나고 비로소 이룬 것이다.
대전에 가면 나는 지금도 ‘대전시 용운동 산 23번지’를 새벽에 둘러본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인해 동네 어귀에 있는 서낭당과 돌비석만이 그 자리를 증명해 주고 있다. 새벽녘 새로 생긴 ‘24시간 ‘편의점’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베지밀 을 마시며 동네를 걸어본다. 고향에서 명절을 맞는 기쁨도 소중하지만 희망을 노래했던 자리를 걷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경험해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벌써 12월 달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며 또 다른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우리들 각자는 광활한 우주 속의 한 미세한 원자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뿐인 자신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자신이 관심을 쏟을만한 가치 있는 일을 노래해야 한다.
과거를 추억삼아 지금을 노래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을 만들어 봐야 한다. 때론 힘들고 지칠 수 있지만, 소중한 사람으로 자신의 정원을 만들어 꾸미어 보자. 입김나지 않는 따뜻한 세상과 사람을 그리워하자.
2024.3.12 화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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